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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감지 시리즈

온고잉, 리서치 및 인터뷰 텍스트






〈원격 감지〉는 미 항공우주국 NASA이 실시간 지리 이미지 촬영에 활용하는 기술로, 본 작품에서는 이를 쾌속 조형 (rapid prototype) 연작에 적용하여 과거 작품 〈Vanitas (in a Petri Dish)〉의 정물 배치를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 형상을 도출하였다. 조각 작품들은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데, 먼저 페트리디쉬에 정물 요소들을 배치하고 디지털 사진 촬영을 한 뒤, 데이터를 처리하여 제3축을 생성한다. 마지막으로 완전체의 수리 코드를 외부 기계에 전송, 이미지가 3D 컬러로 한 레이어씩 인쇄되면 작품이 완성된다.



〈원격 감지〉에 대하여: 수잔 앵커와 미술사학자 테레세 리히텐슈타인의 대담


TL / Therese Lichtenstein
수잔, 당신의 작품 중 대부분은 자연 생태계를 모방하는 기술과 방식으로 제작된 인공물이죠. 조각이나 사진 작품은 격자 포맷에 맞게 세밀히 배치된 실험실 표본을 담고 있고, 설치 작품은 미술관을 마치 미술실험실처럼 보이게 합니다. 〈Vanitas (in a Petri dish)〉 연작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아요. 사진 48장이 두 개의 그리드로 배치되어 있는데,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느낌이 납니다. 물질의 무상함, 삶의 일시성, 죽음의 필연성(nature morte)을 말하고 있어요. 이런 장르와 주제를 탐색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작품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SA / Suzanne Anker
제가 표현하고자 한 의미는 바니타스(vanitas)의 개념을 21세기로 가져오는 것이죠. 바니타스는  네덜란드 상인 세력이 부상하던 시기, 지나친 물질적 가치관에 대한 반향으로 시작됐거든요.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전 세계를 휩쓴 시장자본주의와 식민주의 덕분에 이국적인 사치품들이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그 때 바니타스는 선과 악의 충돌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 겁니다. 삶에 물질주의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 네덜란드 화가들은 정물화에 시든 꽃이나 뼈, 부패한 물체 등을 담으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끝이 있음을 표현했어요. 그렇게 교훈적 메시지를 전하며 바니타스화는 소비문화의 심벌이 됐구요. 이 사진들 속의 페트리디쉬(Petri dish)도 그런 의미가 있죠. 페트리디쉬는 과학자들이 곰팡이나 박테리아, 세포, 배아 같은 것들을 담는 용기로 쓰이잖아요. 유전자 조작의 시대에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될 만하죠. 미생물이나 침습성 혹은 변이성 생물체처럼, 숨어있던 것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장소로서 비유적 의미를 갖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명명법, 그리고 21세기에 자연이 사람의 손에 의해 변화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요. 17세기 네덜란드 예술가들이 새로 발견한 부와 사치품을 미화했다면, 지금은 세포와 조직, 심지어 유전자의 상업화는 바이오테크 기업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거대한 산업이 된 셈이죠. 과거엔 미천했던 것들이 이제 부의 수단이 된 겁니다.   

TL
정말 흥미롭군요. 〈원격 감지〉의 투명한 유리용기와 받침대를 들여다볼 때 벽에 걸린 〈Vanitas (in a Petri dish)〉의 대형 이미지를 엿볼 수 있죠. 〈Vanitas (in a Petri dish)〉의 확대도는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훨씬 작고 2차원이 아닌)을 반전시킵니다. 한편 〈원격 감지〉의 조형들은 과학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가공되었을 것 같은 풍경과 정물의 형상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미니어처 정물 조형처럼 가까이에서 보는 것에서 풍경을 담은 조형처럼 다소 거리를 둔 공중시점으로 시점으로 보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원격 감지〉의 프로토타입 조형을 제작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SA
‘Remote sensing’ (원격 감지)는 미 우주항공국 NASA에서 사용하는 기술인데요, 오염이나 전쟁 등으로 직접 들어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지역의 사진을 촬영하는 데 사용합니다. 인공위성 데이터가 해당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실시간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죠. 제가 만든 쾌속조형(rapid prototype)
1 설계 단계에 있는 3차원 모델을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모형이나 시제품(Prototype)으로 다른 중간 과정 없이 빠르게 생성하는 새로운 기술. 『지식경제용어사전』, 편집자 주.
작품은 바로 이 기술을 차용한 것으로, 공중에서 본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조형은 네 단계를 거쳐 제작되는데, 먼저 페트리디쉬에 정물 구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때는 건조 씨앗이나 이국적인 향신료, 쇳조각, 플라스틱 조각까지 자연물과 가공품을 두루 사용해요. 다음으로는 정물 구성을 공중 뷰에서 디지털 촬영하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는 소프트웨어 처리를 통해 3D축, 즉 Z축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도출된 숫자 코드를 쾌속조형 기계에 전송하면 한 층씩 인쇄되는 거죠. 이 기계는 적층 방식으로 조형을 만드는데요, 마치 퇴적암이 형성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동시에 색상이 들어가고요. 완성된 색채 조형은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어두운 색상이 있는 부분은 들어가고, 밝은 색상은 튀어나온 것처럼요. 조형 기계는 색상을 데이터로 읽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은 예측 불가능하고, 놀라울 만큼 독창적이죠. 〈Vanitas (in a Petri dish)〉 연작이 정물화에 가깝다면, 〈원격 감지〉는 풍경화, 그중에서도 현미경으로 본 풍경화인 셈이에요. 둘 다 각각의 미술 장르를 표현하면서, 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미술사와의 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TL
맞습니다. 그런데 〈원격 감지〉를 보면 풍경화인 동시에 정물화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시각적으로 두 장르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아요.

SA
〈원격 감지〉는 2차원과 3차원 사이에 있는 작품입니다. 제작하는 각 단계에서 작품을 보는 참신한 방식이 나오고, 그 덕분에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죠. 전 이 작품에서 기호가 오브제로 승화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었거든요. 이 “미세풍경화(microlandscape)”는 지도를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데이터로 가상의 지형을 모의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데이터는 공간과 지형의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수잔 앵커는 시각 예술가이자 이론가로, 예술과 생명과학의 접점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21세기에 자연이 인간에 의해 바뀌어 가는 모습을 탐색하며 유전공학, 기후변화, 멸종, 독성 오염 등의 주제를 조명하는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뒤얽힌 강가’에 대해 계몽된 사고방식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작품에는 식물 표본, 의학 유물, 실험 도구, 현미경 이미지, 지질 표본 등 “기성품과 발견된 사물들”을 자주 활용하며, 디지털 조각, 설치, 대규모 사진 작품에서 LED 조명으로 재배한 식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타임즈』, 『아트포럼』, 『아트 인 아메리카』, 『플래시 아트』, 『네이처』지 등의 매체에 소개된 바 있다. 2005년 이래 뉴욕 SVA 순수미술 학부 학장으로 재임하며 2011년 직접 설립한 SVA 바이오 아트랩을 통해 전통적 방식과 실험적 미디어를 상호 조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